2013. 5. 28. 23:02ㆍ불교이야기/성암사 다라니108순례
수도암
일시:2013년 5월19일
주소:경북 김천시 증산면수도길1438번지
소개
직지사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 암자로 불령산 정상 부근에 있으며
도선국사가 수도도량으로 이절을 창건하고 매우 기쁜 나머지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하는 사찰로 조선 시대에 벽암각성이 중창했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포응이 다시 이룩했던 것을 6· 25전쟁 때 빨치산 소탕 작전으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불타버렸던 것을 1960년에는 대적광전· 약사전· 정각암· 요사채 등 4동의
건물에서 3, 4명의 승려가 수도하고 있었는데 조계종 제11대 종정인 법전이 와서 크게 중수하여 20여
동이 넘는 큰 가람으로 변모했다고 하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적광전· 약광전· 수도선원· 관음전· 나한전· 노전· 정각· 서전· 낙가전이 있으며 유물로는 도선이 조성했다는 약광전의 석불좌상(보물 296), 수도암의 절터가 마치 옥녀가 베를 짜는 모습의 명당터라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탑을 세웠다는 삼층석탑(보물 297) 2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307) 등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과 초석이 있습니다
비가 아침부터 조금씩 오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많이 오지 않아 다행입니다
안개가 자욱한 수도암
대적광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경주시의 석굴암 불상보다 80cm 작으며 9세기에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불상의 운반에 고심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 불상을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했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물 제307호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되었으며
약광전 석불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하며, 금오산 약사사, 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좌상과 함께 방광했다고 하여 삼 형제 불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불령산 수도암 약광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54m의
고려시대 석불좌상입니다
보물 제296호
머리에 원통형의 관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처럼 보이지만, 광배와 대좌가 있고
신체 각 부분의 표현으로 보아 여래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얼굴은
마모가 심해 세부수법을 자세하게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머리 부분에 보관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는 약왕보살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서 흔치 않은 예입니다.
양 어깨에 걸쳐져 있는 옷의 주름은 도식적이고, 손모양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나란히 모아 보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도식적으로 처리된 옷주름과
형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등이 고려초기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에는 연꽃무늬·덩쿨무늬·불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4각형으로 윗부분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아랫부분에는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을 조각하였습니다.
이 석불좌상은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데, 단아한 얼굴에 머리에는
원통관을 쓰고 있으며 두 어깨는 좁아진 편이고 통견의 옷주름은
도식적이며 두 손은 법계정인을 취하면서 보주를 들고 있습니다
광배는 거신광으로 연화문, 당초문, 화염문 등을 새겼고, 대좌는 상대는 앙련을,
중대는 안상, 하대는 복련을 조각한 방형대좌를 보여주고 있는 특징으로
보아 고려 초기인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합니다.
삼층석탑은 이 절터가 마치 옥녀가 베를 짜는 모습의 명당 터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다.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쪽에 서 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오는데 앞 뜰이 좁아서
탑과 법당과의 거리가 가깝습니다.
보물 제297호
나한전으로 가는다리
석조 비로자나불 우측 보현보살님
석조 비로자나불 좌측 문수보살님
수도암 나한전은 전국의 나한전 중에서도 으뜸 기도도량으로 통한다고 하는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중 한가지가 수도암 나한전의 신묘함을 더해 줍니다
먼 옛날 한 노파가 쌀을 지고 수도암을 향하고 있는데 수도암은 깊은 산중에
위치한 터라 오르는 길이 여간 힘든게 아닌데도 한 처사가 노파를 도와
쌀을 턱하니 어깨에 짊어지고 수도암에 올랐다고 합니다
법당을 향해 간단하게 합장을 마친 노파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옆을 돌아보자 처사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노파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다가 이윽고 나한전으로 향했는데,
나한전에 앉아있는 열여섯 나한 중 한분이
흐뭇하게 웃고 있는게 아닌가.
그가 바로 쌀을 절까지 옮겨다 준 처사임을 안 노파는 수도암 나한전의
신령스러움을 알게 되고 죽는 날까지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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