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26. 00:50ㆍ불교이야기/성암사 다라니108순례
기림사
순례일시:2013년2월17일
주소: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전화:054-744-2292
사적기에 따르면 기림사는 신라 선덕왕 12년(643) 창건되었다고 한다. 기림사라고 불리기 전에는 임정사로 불렸는데 이 절에는 광유선사가 머물고 있었고 이 임정사가 선덕왕 12년 원효대사에 의해 기림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함월산 기림사는 동해에서 신라 경주에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였는데 과거 이 길을 통해서 석탈해가 경주에 들어가 탈해왕이 되기도 하였다.
기림사의 창건주로 알려진 광유선사와 관련된 설화에 의하면 그는 신라승려가 아닌 외국승려 곧 인도승려로 여겨지는데 그렇게 된 원인은 기림사의 지정학적 위치와 기림사가 인도의 기원정사에서 절 이름을 따온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광유선사와 원효대사가 기림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언급은 후대에 덧붙여 진 것으로 생각된다. 원효의 경우 그가 정식으로 승려가 된 것이 648년으로 선덕왕 12년 당시에는 절 이름을 바꿀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기림사에 관해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삼국유사」 만파식적조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681~692)이 신라 삼보 중 하나인 만파식적을 감은사 앞 바다에서 얻어서 경주로 돌아오는 길에 기림사 서편 시냇가에서 쉬었는데 이 때 용에게 받은 옥대의 고리 하나를 떼어 시냇물에 담갔더니 곧 바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고 그 바람에 용이 날아간 자리에 용연(龍淵)이 생겼다고 한다.
감은사는 신문왕이 동해의 해중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한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세운 절로 이 절 동해에서 외적을 물리치는 능력을 갖고 있는 만파식적을 얻었고 기림사에서 용이 승천하였다는 데서 이 곳 기림사가 감은사와 더불어 동해바다를 지키는 호국사찰로 기능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후 기림사에 관한 기록이 없다가 고려 후기에 가서야 다시 나타난다. 「삼국유사」 <낙산이대성>조에 의하면 기림사 주지 각유(覺猷)가 몽고 침략 때 의상대사 이래로 낙산사에서 보관해오던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궁중에 보관할 것을 건의하고 있고, <전후소장사리>조에 의하면 고려 예종 때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님 치아를 몽고 침락시 강화로 수도를 옮길 때 잃어버렸는데 이를 다시 찾아 전각에 모셨다는 사건의 전말을 대선사 각유가 그대로 적어 두었다고 한다.
각유는 궁중의 보물들에 대한 소재를 잘 파악할 정도의 위치에 있었으며 그가 맡았던 대선사라는 직책은 고려시대 선종계통의 가장 높은 계위였고 일연이 노숙이라고 존칭을 붙인데서 당시 그의 위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각유가 기림사의 주지를 맡았다는 점에서 고려후기 불교계에서 기림사가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좌의 묵서명에 연산군 7년(1501) 조성이란 글귀가 있는 건칠보살좌상의 조상양식이 원나라 계열로 보이는 점도 고려후기 기림사의 성세와 견주어 있을 법한 일로 보인다.
숭유억불정책하의 조선에서 기림사는 세종대(1418~1450) 해인사, 단속사, 견암사와 더불어 경상도의 4대사찰로 130결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연산군 7년이 조성의 건칠보상좌상 좌대에서 기림사가 여전히 사격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시에는 신라 때의 호국사찰의 성격을 이어받아 경주지역의 승병과 의병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대적광전 봉안된 비로자나불상은 임진왜란 직후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1986년 이 불상의 복장에서 고려시대 사경을 비롯한 많은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으며 현재 이 유물들은 보물로 일괄 지정되어 현재 유물전시관에 전시하고 있다. 이후 기림사는 조선후기에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일제시대에는 31본산의 하나였다.
대적광전
. 대적광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이고 본존불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기림사의 주요 전각이다. 그 대적광전을 중심에 두고, 대적광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약사전, 왼쪽에 응진전, 대적광전과 마주한 남쪽으로는 진남루를 배치해 사각의 성지를 이루고 있다.
3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한다
응진전
약사여래불
고려 때만들어진 3층석탑보물제415호
삼천불전의 불상은 모두 도자기로 만들어졌는데,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 조상되었다고 한다.
관음전
대적광전 부처님, 비로자나 불을 본존불로 모시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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