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연합뉴스
김현태 박성진 기자 = ’철녀’(鐵女)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는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4개봉을 모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오 대장은 27일 오후 6시16분(이하 한국시간) 북면 버트레스 루트를 통해 무산소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천91m) 정상에 섰다.
이날 오전 5시 캠프4(7천200m)를 출발해 13시간의 사투 끝에 정상을 밟았다.
초속 14~20m로 부는 강한 바람과 영하 30℃에 가까운 혹한의 추위를 뚫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가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오 대장은 정상에 오른 직후 태극기를 꺼내 들고 “국민과 기쁨을 나누겠다.
정말 고맙습니다”고 말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14좌 완등은 여성으로 세계 최초며 남녀를 통틀어서도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 이후 세계 20번째다.
2000년 7월 엄홍길 대장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이후
박영석(2001년), 한왕용(2003년) 대장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4번째로 14좌에 발자국을 남겼다.
특히 “대자연을 있는 그대로 만나고 싶어 무산소 등정을 고집한다”고 말했던
오 대장은 14좌 중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천848m)와 2번째 높은 K2(8천611m)를 제외하고 12개 봉에 무산소로 올랐다.
지난달 8일 서울에서 출발한 오 대장은 안나푸르나에 딸린 타르푸출리(5천663m)에서 고
소적응 훈련을 거친 뒤 지난 4일 안나푸르나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컨디션을 조절한 오 대장은 지난 22일 베이스캠프(4천200m)를 출발해
그날 오후 캠프2(5천600m)에 무사히 도착하며 등정의 첫발을 무사히 내디뎠다.
캠프2에서 숙박하고서 오 대장은 24일 정상 바로 밑인 캠프4에 도착해 25일 오후께 1차로 정상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상 공격 당일 초속 20m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등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캠프1로 잠시 후퇴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안나푸르나에 도전했다가 나쁜 날씨 때문에 실패한 바 있는 오 대장은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렸다가 예정보다 이틀 늦은 이날 다시 한 번 정상을 향했으며 안나푸르나는 마침내
오 대장에게 정상을 허락했다.
정상을 밟은 오 대장은 이날 캠프4로 내려와 휴식을 취한 뒤 28일 오후 베이스캠프(4천200m)에 도착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17일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으며 13좌를 오른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은 이날까지
마지막 남은 티베트의 시샤팡마에 오르지 못했다.
파사반과 일부 외국 언론은 지난해 5월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을 제기해
오은선 대장이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로 공인받으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오은선, 막판 컨디션 조절
문제는 역시 날씨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25일 정상 부근의 바람은 초속 16m로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초속 20m보다는 약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2등보다 열 배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
쿠크츠카가 14좌 완등을 위해 마지막으로 오른 산은 공교롭게도 시샤팡마였다


- ▲ '철녀'(鐵女)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는
-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4개봉을 모두 오르는 데 성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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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27일 여성 산악인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완등에 성공하면서 한국 여성 고봉 등반사에 정점을 찍었다.
한국 여성이 히말라야에 본격적으로 도전을 시작한 것은 다른 나라보다 10년 늦은 1980년대에 들어서다.
일본은 마카세코 나오코가 1974년 마나슬루를 밟아 일찌감치 히말라야 8천m 고봉에 도전장을 냈다.
이어 다베이 준코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와 시샤팡마 두 곳 정상에 오르는 등 일본 여성은
히말라야 14좌 중 3곳의 최초 등정 기록을 세웠다.
한국은 1984년 김영자가 처음 안나푸르나(8천91m)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8천m급 고산 등반에 길을 냈다.
이후 다른 한국 여성들이 람중히말, 강가푸르나 등 히말라야 6천~7천m급 등정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8천m급 등정은 1990년대까지 기다려야 했다.
1993년에 가서야 대한산악연맹은 전국 여성산악인 중 재능있는 이들을 선발해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꾸렸다.
당시 이 원정대의 지현옥, 김순주, 최오순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천848m) 꼭대기를 밟았다.
특히 지현옥은 1999년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 중 실종될 때까지 에베레스트,
가셔브롬 1, 2봉과 안나푸르나 등 8천 봉 4개를 등정하며 한국 여성 산악인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후 여성 산악인 중에서는 오은선 대장과 작년 낭가파르밧에서 숨진 고미영 대장이 두각을 드러냈다.
오 대장은 1997년 히말라야 8천m급 봉우리 중 가셔브롬 2봉을 처음 오른 이후 2004년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밟았다.
오 대장은 작년에는 칸첸중가, 다울라기리 1봉, 낭가파르밧, 가셔브롬 1봉 등 4개의 봉우리에
무산소로 오르는 무서운 속도전을 펼치기도 했다.
작년 7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가 실족사고로 숨진 고 대장은
2006년 뒤늦게 히말라야 고산 등반에 뛰어든 경우다.
2006년 10월 초오유 등정에 성공하고 나서 작년 숨질 때까지 불과 2년9개월 만에 히말라야
고봉 14개 중 11개에 올랐지만 12번째 낭가파르밧에서 변을 당하고 말았다.
[사람과 이야기] '14좌 완등' 오은선 대장의 '도전 인생'
154㎝ 철녀, 8000m 넘는 '거인'이 되다
5학년 때 처음 산에 매료… 공무원 일자리 던지고 93년 에베레스트 첫 도전
'죽음의 문턱'까지 수차례… 2년간 4개씩 '최고봉' 정복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27일 똑바로 서 있기조차 어려운 칼날 같은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合掌)했다. 여성 산악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 대장은 희박한 산소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고맙습니다" 인사를 연발했다. 가족과 국민의 응원에 대한 감사였고, 끝내 자신을 허락해 준 안나푸르나의 여신(女神)에 대한 인사였다.
◆인수봉에서 시작된 꿈
불교신자인 오 대장의 왼쪽 팔목엔 어머니가 준 염주가 걸려 있었다. 딸이 8000m 고지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어머니 최순내(64)씨는 서울 면목동 집에서 내내 기도를 했다. 오 대장이 마침내 정상에 섰다는 소식에 최씨는 "은선이가 온 청춘을 산에다 바쳐서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내 자식이지만 정말 대단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 ▲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철녀(鐵女)’란 별명을 얻은 오은선 대장은 한 편으론 눈물도 많은 여린 성격이다. 지난해 4월 칸첸중가 등반을 앞두고 환하게 웃고있는 오은선 대장. / 블랙야크 제공
1m54, 48㎏의 작은 체격이지만 오씨는 어린 시절부터 체력과 순발력이 남달랐다. 최씨는 "은선이는 시골 담벼락을 넘어다닐 정도로 활달했고, 예방접종 빼고는 병원에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기보다 나물을 좋아하는 딸이 산을 타다가 힘이 떨어질까 봐 1년 내내 홍삼과 곰국을 달였다. 최씨는 "이제 은선이가 올바른 사람 만나서 가정을 일구고 사는 것을 보면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오 대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오수만(69)씨의 손에 이끌려 도봉산에 갔다가 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대학 산악부에 들어간 오은선씨는 2학년 때인 1986년 북한산 인수봉(810.5m)에서 처음 암벽 등반훈련을 했다. "암벽을 처음 경험하고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는 오씨는 녹초가 된 부원들 사이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기뻐했다. 이때부터 '날다람쥐'라는 별명이 붙었다.
◆에베레스트의 영광과 고통
대학 졸업 후 서울시교육청 공무원(8급)으로 일하던 오은선씨는 1993년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정상(8848m)을 밟지 못하고 캠프3(7300m)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4년 뒤인 1997년 오은선은 가셔브룸Ⅱ(8035m)에 오르며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첫 도전 때 실패의 쓴 잔을 안겼던 에베레스트가 오은선 산악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2004년 5월 아시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에 성공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오씨는 정상에서 내려오다 마지막 캠프(8300m)를 앞두고 탈진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데, 편안한 기분이 들면서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산에서 죽기는 싫었어요." 다른 원정대의 셰르파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 대장은 2008~2009년에 매년 4개씩 8000m급 봉우리를 오르며 '철(鐵)의 여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4좌 완등의 마지막 고비인 안나푸르나는 쉽게 오 대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년 10월 그는 두 차례
안나푸르나 공략을 시도했지만, 1m 앞이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과 혹한에 굴복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27일 마침내 안나푸르나의 정상에 선 오은선 대장. "14좌 완등에 성공하면, 행복하게 산을 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여유 있게 생각해 보겠다"던 그의 소박한 꿈도 함께 이뤄질 수 있게 됐다.
[프로필] 8천m 14좌 완등 여성 산악인 오은선

세계 여성 최초로 8천m급 고봉 14좌 완등에 성공한 여성 산악인.
키 154㎝에 몸무게 50㎏ 밖에 나가지 않는 작은 체격이지만 태릉선수촌에서
체력 테스트를 해본 결과 마라토너를 능가하는 심폐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3년 대한산악연맹이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내자 당시 다니던 직장인
서울시 교육청에 사표를 내고 고산 등반에 뛰어들었다.
1997년 7월17일 가셔브롬Ⅱ(8천35m)에 오르며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첫발을 내디뎠고
13년 만인 2010년 4월27일 안나푸르나(8천91m)에서 대장정을 모두 마쳤다.
그 사이 2002년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5천642m) 등정을 시작으로 2004년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4천897m)까지 오르며 한국 여성 최초로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하기도 했다.
대학산악연맹 마라톤 대회에서 언제나 여자 선수 중 1등을 도맡아 할 정도로
뛰어난 체력과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해 등정을 중단할 수 있는 결단력이 14좌 완등의 배경이 됐다.
1남 2녀 중 장녀이며 미혼이다.
'대단한 카메라맨'…
非전문가로 히말라야 숱하게 등반
- 박세미 기자 r
- 입력 : 2010.04.28 02:50 / 수정 : 2010.04.28 03:25
- ▲ 정하영 KBS 촬영감독
"여기가 히말라야 정상입니다~. 여성 최초 완등입니다. 흐흑."
영하 30도, 초속 12m의 강풍이 부는 가운데 정하영(44) KBS 촬영감독의 목소리가 흐느끼듯 떨렸다. 오은선 대장이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순간, 13시간 넘게 오 대장을 힘겹게 따라오던 그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그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완등을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지켜본 시청자들은 "오은선은 물론이지만, 저 카메라맨도 정말 대단하다"고 놀라워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서 1㎏ 남짓한 6㎜ HD급 소형카메라로 중계까지 하면서 안나푸르나에 오른 것이다.
1993년 KBS 19기 공채로 입사한 정 감독은 산악 다큐 촬영과 인연이 깊었다. 1999년 엄홍길 대장의 칸첸중가 등반 생중계팀에 합류하면서 히말라야와 첫 인연을 맺었고, 지난 10년간 7회 이상 히말라야에 올랐다. 2004년 카메라 기자로는 이례적으로 정부로부터 체육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가 오은선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등반 촬영에 합류하게 된 건 지난해부터다. 오은선 대장의 12좌 낭가파르바트(8126m), 13좌 가셔브룸 Ⅰ봉(8069m) 등 히말라야 4개 정상 등정 과정을 밀착 취재해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지난해 10월 오 대장이 안나푸르나 첫 등정에 실패했을 때도 함께 했던 정 감독이었다.
정 감독은 수년 전 아내를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먼저 떠나보내고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혼자 키우며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그는 오은선 동행취재를 위해 강도 높은 동계 빙벽 훈련을 받는 등 이번 취재에 애착이 강했다고 KBS 관계자는 전했다.
KBS는 이번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반 생중계에 총 23명의 방송단을 꾸려 네팔 현지에 파견했고, 소형카메라와 ENG 카메라 등 총 4대의 카메라를 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