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순례사찰 문경 김룡사
2011. 3. 21. 20:04ㆍ불교이야기/성암사 다라니108순례
제6차108다라니기도순례지는 경북 문경시 김룡사, 윤필암 ,대승사, 3개사찰을 돌며 순례기도 정진하고 부처님의 가피를 듬북받고 돌아왔다, 20일 새벽부터 내린비는 봄비답게 주룩주룩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성암사 다라니기도 순례일행은 전천후이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어김없이 성지순례지로 향하니까, 비옷도 가지각색이다 ,빨강우산 파랑우산 하얀비옷 노랑비옷 정말 각가지색갈로 수를놓아 ,마치 봄동산의 꽃동산처럼 아름다웠다, 그런데 응현스님의 원력인지 오전12시까지 내리던비는 다라니기도 소리에 놀라 서인지 그만 맑게 개였다, 신도님 다들 입을모아하는 말인즉, 성암사 행사에는 오던비도 그친다는 말이 맞다고들 하였다,
오늘같이 궂은날씨에도 어김없이 기도정진하신 불자님 복많이 많이받으시기를바랍니다
김룡사
사찰순례일시: 2011년 3월20일
소재지: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410번지
운달산김룡사사적서 <雲達山金龍寺事蹟序> 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 (588) 운달 조사(雲達祖師)가 개산하여 사명을 운봉사(雲峰寺)라 하였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본래의 절 이름은 운봉사란 사명이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중에 전해지는 괘불화기(掛佛畵記 ,1703년) 에도 운봉사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명이 김룡사로 바 뀐 연유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것은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에 피신하여 숨어 살면서 신녀가(神女家)를 만나 매양 지극한 정성으로 불전에 참회 하더니 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용이라 하였다. 그 이후부터 가운이 크게 부유해져 사람들은 그를 김장자(金長者) 라 하였고,이로 인하여 동리 이름 또한 김룡리(金龍里)라 하였으며,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절은 최소한 18세기 이후 김룡사란 이름으로 되었다고 생각된다. 운달조사의 개산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까지의 사적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임진왜란으로 전소 되었다가 다시 중창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후기의 사적에 대하여는 <운달산김룡사사적>에 의지하여 기록하고있다 <김룡사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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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2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운달산(雲達山) 남쪽에 있으며, 588년(진평왕 10) 운달(雲達)이 창건하였다. 1625년(인조 3)에 혜총선사(慧聰禪師)와 그 제자인 광제(廣濟)·묘정(妙渟)·수헌(守軒) 등이 재건하였다. 일제강점기까지는 전국 31본사 중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절이었으나 지금은 비구니들의 수도처로서, 옛 말사였던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다. |
현재의 대웅전은 17세기에 건립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외3출목·내4출목으로 되어 있고, 상부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이다. 천장은 세 가지 종류의 반자로 재치있게 처리한 점 등 한국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난 건물이다. 기둥의 둘레는 약 2m이나 특이하게도 기단 위에 주춧돌 간의 수평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기둥을 세워 각 기둥의 길이가 서로 다르다. 각 기둥이 건물의 안쪽으로 약간씩 기울어져 있어 건물 자체에 안정감을 주는 특수 기법을 사용하였다. 대웅전에는 삼존불 외에 1644년에 조성된 삼장탱화와 괘불(경상북도유형문화재 303)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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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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